한나 예언자 못지않게 오랜 세월 동안 결코 성전을 떠나지 않으면서 기도생활에 전념해 오신 연로한 자매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놀랍게도 별것도 없는 제게 당신의 내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시며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엄청나게 기도를 많이 하고 잘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솔직히 당신의 기도생활은 빵점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상태는 메마른 나뭇가지나 속이 텅 빈 강정 같답니다. 죽기 살기로 기도를 바치지만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도 없고, 다른 무엇에 앞서 기도의 맛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저 숙제처럼, 의무처럼 그렇게 기도를 바쳐왔다는 것입니다.
제 코가 석자인 상태지만 작은 조언을 하나 건네 드렸습니다. “그간 해 오신 기도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한결같은 자세로 기도의 삶을 살아오신 자매님의 모습에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앞으로 기도하실 때 이런 노력을 좀 더 해보시기 바랍니다. ‘독백을 넘어 대화하는 기도!’ 오랜 세월동안 자매님만 줄기차게 이야기하셨으니, 하느님께서도 들으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이제는 자매님이 말씀하시기보다 하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경청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핵심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일’입니다. 기도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야말로 기도의 핵심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기다리는 일이요, 그분의 빛을 갈망하는 일입니다. 경청한다는 것은 아무런 말 없이 시간을 죽이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듣는 시간은 무의미한 소비의 순간이 아니라, 지극히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입니다.
오래 가지 않아 자매님께서 환한 얼굴로 다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진지한 들음 그 가운데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 속에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답니다. 기도가 편해지고 재미있어졌답니다. 기도는 이것 해주세요, 저것 해주세요, 일방적으로 졸라대는 방식을 반드시 넘어서야 합니다. 기도에 있어 하느님과 나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 경청이 정말 중요합니다.
기도란 한 나약한 인간 존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하느님 대전에서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일입니다. 침묵 속에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일입니다. 기도는 불안정한 인간 조건에서 완벽한 평화이신 하느님 현존으로 나아가는 일, 불완전한 우리 인간 세상에서 완전한 하느님 나라로 넘어가는 일, 그리고 거기서 힘을 얻고 다시 인간 세상으로 넘어오는 일, 그리고 그 기도의 결실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