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뉴스에서 씁쓸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비싼 아파트촌의 주민들이 장애인 학교나 임대주택 같은 어려운 분들을 위한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장면입니다. 본인들이 정당하게 얻은 재산 가치가 이런 시설 탓에 훼손될까 지나치게 걱정하는 모습같이 보였습니다.
최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화제입니다. 한국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드라마를 보다가 그 씁쓸하던 뉴스들을 떠올렸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설탕 뽑기, 오징어 게임 같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합니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가 어린 시절 즐기는 놀이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놀이 결과와 달리 드라마 속 놀이 결과는 잔혹합니다. 게임의 패자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그러나 승자들은 상금을 차지합니다. 상금은 사망자 1인당 1억 원씩 적립됩니다.
드라마 속 게임에는 모두 456명이 참가합니다. 마지막까지 1명만 승자로 남는다면, 456억 원을 모두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게임 운영자는 ‘이 게임의 규칙은 공정하며, 규칙만 잘 따르고 이기기만 하면 상금을 차지할 수 있다.’고 계속 강조합니다. 목숨값을 상금으로 챙기는 게 공정한 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드라마 속 참가자 중 상당수는 이 말에 순응합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비뚤어진 ‘공정성’은 첫 게임에서 절반 이상의 참가자가 세상을 떠난 뒤 드러납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장면에 참가자들이 경악하자, 운영자는 ‘다수가 동의한다면 여기서 게임을 중단할 수 있으며, 그 경우 당시까지의 상금 200여억 원은 탈락자들의 유족에게 전달된다.’고 밝힙니다.
놀랍게도 살아남은 이들 중 상당수는 ‘왜 공정하게 승리한 우리가 아니라 패자에게 상금을 주느냐’ 하면서 분노하며 항의합니다. 그런 잔혹한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도, 자신이 게임에서 이긴 것은 자신의 노력 덕이니 몫을 챙겨가겠다는 생각이 내면화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에서 반복됩니다. 게임 전체를 기획하고 돈을 내어 진행한 냉혈한 할아버지는 최후의 승자가 되어 456억 원을 받아 나왔지만 차마 돈을 꺼내 쓰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 돈은 자네의 운과 노력의 대가야. 자네는 그걸 쓸 권리가 있어.”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진 것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을까요? 아니면 불운하게 실패했거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나누는 것이 옳을까요? 예수님은 <오징어 게임> 속 공정성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조금이라도 더 가진 이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고 사회적 약자들과 나누는 게 공정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글 | 이원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LAB2050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