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개인적으로 ‘에디트 슈타인’(수도명 :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1891~1942) 성녀의 영성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늦게나마 이토록 위대한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신비스럽고 매력적인 성녀시더군요. 유대인 출신 무신론자에서 아빌라의 데레사를 흠모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인에서 가르멜 봉쇄 수녀회 수도자로, 가르멜 수도자에서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사랑의 순교자로 변모를 거듭한 그녀의 삶이 참으로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합니다.
단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도 지극히 평온했던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갑작스레 닥친 큰 불행,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비참한 운명을 신앙의 빛 안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우리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우리는 위로부터의 빛에 마음을 열어야만 합니다.”
그녀의 생애 안에는 유난히 빛나는 측면이 있습니다. 나치가 활개를 치던 어렵고 혹독한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으로서 그녀는 시대의 아픔과 부조리,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대의 부조리 앞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으며 부단히 고뇌하고 투쟁했습니다. 그녀는 처참하게 희생당하고 있던 유다인들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나치가 저지르던 기가 막힌 만행의 실상을 낱낱이 적어 교황청에 보내면서 개입해줄 것을 거듭 요청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 그녀가 보여준 마지막 삶의 모습은 가장 강렬한 빛을 발했습니다. 숨도 멎을 정도로 공포로 가득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였지만, 에디트 슈타인으로 인해 따뜻한 분위기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녀는 두려움에 질려 어린 아기를 돌볼 정신조차 상실한 어린 엄마를 대신해 자상하게 아기를 돌봤습니다. 그녀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켜낼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선종하기 며칠 전 원장 수녀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녀의 성숙하고 균형 잡힌 신앙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제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 하느님의 계획에는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활이 더없이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지금 내면을 좀 더 정화시키기 위한 좋은 인생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저는 하루 온종일 좋으신 우리 주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드러나게 기도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점은, 지상의 집인 이 장소가 주어졌다는 것과, 영원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정입니다”(에디트 슈타인).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