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동생 흘라잉퓨의 꿈은 두 아들의 ‘신쀼’를 행하는 것이었다. 신쀼는 미얀마 소년들이 일생에 한 번은 꼭 한다는 승려 체험 의식이다. 적게는 몇백만 원 크게는 몇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드는 신쀼, 흘라잉퓨와 남편은 두 아들의 신쀼를 위해 몇 년 동안 열심히 저금을 하고 있었다.
두부과자 공장 사장님 우나웅의 꿈은 시골 동네 아이들이 더 많은 책을 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미얀마 여행자들과 함께 책을 모아 시골 동네 학교에 보내면서 학교 선생님인 딸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인레의 활동가 띠하의 꿈은 태국 대학원에 가는 것이었다. 대학원에서 지역개발 공부를 마친 후 돌아와 인레의 천연자원 보존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영어 공부를 하며 대학원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양곤의 활동가 나잉퓨는 한국 드라마와 방탄소년단을 사랑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들을 보며 한국을 동경했고, 언젠가 꼭 한국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저금을 하고,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인레의 아웅우는 프리랜서 화가였다. 교육에 쓰일 삽화 작가를 찾다 알게 된 친구였다. 그는 사무실에 있는 고급 색연필이 갖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었다. 2020년 내 생일, 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컵을 깨고는 머쓱하게 웃던 그는 깨진 컵을 변상하겠다며 초상화를 그려주기로 약속했었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날이었다. 나는 사업 홍보 영상 제작을 위해 직원들과 마을에 가기로 했었다. 전부터 종종 말썽이던 폰은 그날도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직원들은 군부가 모든 통신을 차단했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나마 끊기지 않은 와이파이를 찾아 간 사원에 도착하자마자, 카카오톡 알림이 쉼없이 울렸다. ‘우윈민 대통령 구금, 아웅산 수찌 국가 고문 구금’이라는 한국발 뉴스 기사들이 교민 단체 카톡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섭고, 분노하고, 절망적인 마음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냥쉐를 비롯한 미얀마 전역의 모든 경제가 파탄났지만, 2월 5일부터 백신이 보급된다는 소식에 모두들 일상을 회복할 거란 희망이 움트는 시기였다. 하지만 2월 1일, 군부는 그렇게 국민들의 모든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놓았다.
옆집 동생 흘라잉퓨의 남편은 일자리를 잃었다. 관광 ‘툭툭’(미얀마 현지 교통수단) 기사였던 그는 코로나 상황에 손님이 줄자 손기술을 살려 오토바이 수리점에 취직했다. 쿠데타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자 오토바이 수리점 사장은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었다. 2020년에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룬 아들이 학교에 간 날은 고작 두 달이었다. 백신 보급과 함께 등교할 날만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기약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두부공장 우나웅 사장님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운명하셨다. 쿠데타가 터진 후 학교 교사인 딸은 CDM(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며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7월 미얀마의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자 사장님은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산소통, 약, 마스크, 식량을 나눠 주며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우나웅 사장님은 지역 주민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인레의 활동가 띠하는 모자와 마스크를 눌러쓰고 옆 지역에 수도 없이 다녀온다. 며칠째 연락이 안 되기도 하고, 어딘가를 다쳐 오기도 한다. 옆 지역에서는 몇 달 째 군부의 공습이 계속 되고 있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성당이 무너지고, 마을이 불타, 사람들이 계속 인레로 들어오고 있다. 띠하는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내어주고, 정글로 숨어든 사람들에게 약과 식량을 실어나르고 있다.
양곤의 활동가 나잉퓨는 몇 달 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녀가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지역 청년들과 함께 단체를 조직해 군부에 맞서 시위를 계속했었다. 며칠에 한 번 머무르던 곳을 옮기며 숨어 다녔는데, 어느 날 군부가 단체들의 숨어있던 지역을 급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간간히 이어지던 통화에서 ‘나도 너무 무서워, 그렇지만 어쩌겠어, 해야 할 걸 해야지’라며 웃어 보였었다.
인레의 아웅우는 붓 대신 총을 들었다. 그는 정글 어딘가에서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수척해진 얼굴로 그동안 고마웠다며 잘 지내라고 담백하게 웃어보였다. 꼭 다시 만나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초상화를 받으러 가겠다는 말은 열악한 인터넷 상황으로 전달되지 않은 채 전화가 끊어졌다.
2월 1일, 군부는 미얀마 사람들의 그 소소한 모든 꿈들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지금 미얀마 국민들의 꿈은 ‘이 악몽이 끝나길, 내일도 살아남아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길’이다. 200여 일이 지난 오늘도 SNS에서는 ‘RIP’(Rest In Peace, 명복을 빕니다)가 타임라인을 도배한다. 나는 아마 내일도 누군가의 명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 다사다난한 인생을 끝내고 온 그들을 주님께서 두 팔 벌려 안아주시길.
글 | 윤소희 데레사(해외주민운동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