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대학 출신인 약사 부부가 상담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학력고사 세대로 대학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남편의 학력고사 점수가 아내보다 3점 낮았습니다. 어느 날 크게 말다툼을 하다가 너무 화가 난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남편에게 “공부도 못하는 게!”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순간 남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화분을 던지며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여러 날 아내에게 눈빛도 안 주고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고, 설령 잘못된 말이라 해도 화나면 그 정도 말을 할 수 있지 않느냐하는 생각에, 아내는 속 좁은 남편이 더 쪼잔해보였습니다.
아내는 말했습니다. “화나면 누구나 그 정도 말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남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화가 나니까 더욱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 말에 이번에는 아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학력고사 점수가 3점이 낮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두 사람이 암묵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온 자존심의 핵심이었습니다. 특히 자존심이 강한 남편은 아킬레스건처럼 그것만은 아내가 건드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떨어뜨리고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아내가 건드렸으니 매우 불쾌해진 것이었습니다.
캐나다 의료진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화날 때 사람의 지능은 평균 30이 떨어집니다. 아이큐가 120인 사람이 화날 때는 90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평소 하던 말보다 훨씬 비이성적인 말이 나오게 됩니다. 어른이면서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철없는 막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 한 말은 대개 나중에 후회할 말입니다. 또 지능은 떨어지고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기에, 원시적 공격 본능이 올라와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을 자극하고 공격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가장 흔하게 부부 사이에 화가 날 때 하는 말이 상대 집안에 대한 인신공격입니다. “당신 집안 아버지가 그 모양으로 살았는데, 당신이 뭘 배웠겠어!” 하는 식입니다. 이 말은 바로 배우자의 반격을 불러옵니다. “당신 집구석은 얼마나 대단해서!” 싸움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화가 날 때는 말을 가려서 하거나, 그럴 자신이 없다면 잠시 침묵하는 것이 답입니다. 철부지 아이는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울 때가 훨씬 많으니까요.
글 | 이서원 프란치스코(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