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보다 더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네 살 때 어머니와의 사별, 돌봐주던 언니들의 수녀회 입회, 15살에 언니들을 따라 가르멜 수녀회 입회, 젊고 신심이 깊다는 이유로 동료 자매들로부터 받은 혹독한 수모와 냉대, 결핵 발병, 24살에 선종…. 우리에게는 ‘소화(小花) 데레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아기 예수의 데레사 동정 학자(1873~1897) 성녀의 짧고 안쓰러운 생애입니다.
그러나 성녀는 짧은 생애 내내, 특히 투병 기간 동안, 그리고 죽어가던 순간조차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고 ‘행복하다.’라고 외쳤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 한 가지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못마땅해하며 미워하던 몇 명의 자매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더 깊이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성녀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고 실천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큰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비결은 ‘작은 길’ ‘작은 꽃’ 영성, 그리고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 충실했고 열렬했던 기도였습니다.
성녀는 매일 자신에게 다가오는 호의적이지 않은 존재와 사건, 다양한 고통을 적극적인 기도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상의 작은 의무를 지극정성으로 대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선물로 주신 짧은 생애에 크게 감사하며, 하루를 천 년처럼 그렇게 활활 불사르며 살아갔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가 보여준 기도의 특징은 다정다감한 하느님과의 친밀함이자 천진난만함이었습니다. 성녀는 하느님을 마치 사랑하는 연인(戀人) 대하듯 했습니다. 성녀가 하느님과 주고받은 대화, 곧 기도는 마치 너무 사랑해서 죽고 못 사는 연인들끼리 주고받은 연서(戀書) 같았습니다.
성녀가 수련자 시절, 한 연로한 수녀를 부축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도 그 마음과 노고를 몰라주는 선배 수녀가 밉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던 그녀는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몹시 힘들게 하는 수녀를 위해 나는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잘해 주려고 했지만, 때로 너무 화가 나서 한마디 쏘아붙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때는, 서둘러 밝게 웃어 보이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성녀 데레사는 매일 매 순간 선배 수녀가 내뱉는 불평불만을 기꺼이 참아냈습니다. 때로 그녀에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십자가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