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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서 사들이는 사람들, 빚내야 살 수 있는 사람들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09-10 13:30:24 조회수 : 701

돈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부도 돈을 풀고 은행에서도 돈을 푼다고 합니다. 과거에 10%도 넘던 대출금리는 절반 아래로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1800조 원이나 되고, 이것이 나라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은 어디에 가 있을까요?


통계청 데이터를 살펴보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 돈이 골고루 퍼져 있지 않고 몰려 있어서였습니다. 가장 많은 돈을 빌린 사람들은 가장 부동산 자산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비가 없어 돈을 빌린다는 생각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부동산을 가장 많이 가진 최상위층은 1년 동안 벌어들인 소득의 3배 이상 빚을 내고 있었습니다. 생활비가 모자라 빚을 낸 분들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 더 큰 자산을 사들이기 위해서, 주로 부동산을 담보로 빚을 내신 분들입니다. 반면, 부동산 자산이 아예 없는 최하위층은 1년 동안 벌어들인 소득의 3분의 2 정도의 빚을 내고 있습니다.

재산을 가진 분들은 재산을 늘리기 위해 빚을 냅니다. 빚을 내서 자산을 사들이는 것입니다. 자산 가격이 올라 수익이 나면, 빚은 사실상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 됩니다. 처음에는 큰 빚이지만, 없던 일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금리마저 낮은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 부담이 적어집니다. 재산이 없는 분들은 생계를 위해 빚을 냅니다. 빚을 내서 생계비로 써야 합니다. 이분들에게는 적은 빚이라도 끊임없이 갚아야 하는 고행이 됩니다. 금리도 많이 부담하고, 자칫 돌려막으며 갚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합니다. 그나마 이들은 빚을 내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경제 교과서에서는 금융 기관의 역할을 ‘돈이 남는 곳에서 돈이 필요한 곳으로 돌게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게 돌아갑니다. 금융은 주로 돈이 남는 곳에서 빠르게 돌며 돈을 더 크게 불리는 일을 하는 데 활용됩니다. 정작 돈이 필요한 곳에서는 잘 돌지 않습니다. 제가 들여다본 대출 데이터에서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 말씀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 형제자매를 실천으로 도우라고 하십니다. 인간이 만든 부조리한 빚의 구조도, 인간이 실천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말씀도 세상도 우리에게 점점 더 많은 자선과 선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이원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LAB2050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