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의미 없는 꿈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성경 속에서 예언자들은 환시(vision)뿐 아니라 꿈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수용하고 이해하려 했습니다. 유대인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쓰고 정신분석의 새로운 장을 연 것도 그런 전통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꿈과 관련한 대목이 많지만, 그중 꿈과 관련해 제일 유명한 인물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입니다. 어린 시절, 요셉은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들을 빙 둘러서서 자신의 곡식 단들에게 큰절을 하고,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자신에게 큰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창세 37,6-7 참조)라고 형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로 인해 형들의 미움을 산 요셉은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갇히고, 결국엔 이스마엘인들에게 팔립니다. 요셉이 노예가 되어 이집트로 가게 된 사연입니다.
이집트에서 요셉은 주인의 아내가 유혹하는 것을 거절하는 바람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이집트 임금의 헌작 시종과 제빵 시종의 꿈 이야기를 듣게 된 요셉은 ‘헌작 시종은 곧 복직이 될 것이고, 제빵 시종은 나무에 매달려 새들에게 살을 쪼아 먹히게 될 것’이라 말하는데, 이는 현실이 됩니다. 이 년 후, 파라오의 꿈 이야기를 들은 헌작 시종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감옥에 있던 요셉을 추천합니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풀이하여 ‘일곱 해의 대풍년 이후 일곱 해의 흉년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자 파라오의 신임을 얻어 재상이 됩니다.
요셉의 꿈 해석은 예언자의 비전에 속할 수도 있겠지만, 정신분석의 상징과도 근접해 보입니다. 하지만 무의식 속의 나르시시즘이 ‘절을 하는 곡식 단과 해와 달과 별의 이미지를 만들었다.’라고 하는 식의 이해는 곤란합니다. 시종들과 이집트의 앞날을 꿈을 통해 예측한 것도 여타 점쟁이의 예언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감옥 생활을 하면서 두 시종의 태도를 익히 보았을 것이고, 시종들도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파라오의 꿈은 상당히 스케일이 크지만, 그 당시 한 나라와 왕은 함께 운명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동시성 이론(Synchronicity), 즉 인간의 무의식과 자연이 하나의 거대한 얼개를 이루고 있다는 전제로 보면 그런 이미지의 꿈이 이해가 됩니다.
성경의 예지몽들은 꿈으로 미래를 예측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운명에 겸손하고 신중하게,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더 깊이 살펴보라는 주문이 아닐까요. 요셉이 만난 꿈들처럼, 고통과 희망이 사실은 하나의 쌍으로 한꺼번에, 혹은 순차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 아닐까요.
글 |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