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책을 통해서이지만, 토머스 머튼(1915~1968) 신부님을 처음 만난 후 제가 받은 느낌은 참으로 신선하고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풍기는 영적·인간적 매력에 점점 깊이 빠졌고, 즉시 그의 ‘찐팬’이 되었습니다.
토머스 머튼 신부님이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 중심가 한 모퉁이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깨달음이 다가왔습니다. 뜻밖의 깨달음에 그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지금 여기 이 거리를 오가는 이 사람들이 바로 내 사랑의 대상이로구나. 이들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들의 것, 비록 우리 서로 낯선 사람들이지만 결코 이질적인 존재가 될 수 없구나. 수도자는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존재라는 생각은 환상이요 거짓이었구나.”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봉쇄 수도자로서 다른 사람들과는 크게 다른 신원과 사명을 사는 존재라고 여겼었는데, 자신이 더 낫거나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에 크게 기뻐하며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고, 다른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획기적인 의식의 전환을 이룬 그에게, 세상은 이제 더 이상 악한 장소가 아니었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데 지장을 주는 방해 요소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와 기쁨으로 충만한 장소였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겨진 과제는 세상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현존과 지혜, 세상의 요구와 거짓을 제대로 보게 하는 ‘진정한 고독에 대한 추구’였습니다. 비로소 그는 진정한 의미의 관상가로 거듭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가요? 우리의 주된 기도 지향, 주제는 무엇인가요?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녕, 좋은 성적, 세상 안에서의 승승장구 등도 물론 중요한 기도 주제입니다. 하지만 토머스 머튼 신부님은 좀 더 과감하게 기도의 지평을 확장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는 트라피스트 봉쇄 수도자로서 높은 수도원 담장 안에서 언제나 대침묵 속에 살았지만, 그의 관상 기도는 수도원 담을 넘어 세상을 향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인종 차별, 생태 문제, 자본주의의 폐해, 그로 인해 고통당하는 동료 인간들을 향한 측은지심은 그의 기도 안에 큰 주제들이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건네는듯한 토머스 머튼 신부님의 당부가 이번 주간 삶의 에너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상을 깨고, 남모르게,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기도입니다.”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