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욕심 없이, 갈등 없이 살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크고 작은 일에서 쓸데없는 힘겨루기를 하느라 세월을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남에게 수그리며 살지는 못한다.’ 하고 고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무릎 꿇지 않고 살 수 있는 이가 과연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권력 콤플렉스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유입니다. 꾀를 써서 에사우에게서 장자 상속권을 가로챈 야곱의 인생을 인간의 “권력 콤플렉스”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살면서 겪는 우여곡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쌍둥이 형 에사우가 사냥을 해서 무언가를 집에 가져오는 힘센 자식이라면, 에사우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 동생 야곱은 조금 유약한 ‘집돌이’인 것 같습니다. 가문에 대한 책임을 진 이사악에게는 에사우가 장남답고 믿음직스럽지만, 어머니 레베카는 자신의 곁을 맴돌며 이런저런 도움을 주는 야곱이 더 사랑스러웠겠지요. 어머니와 야곱이 함께 쌍둥이 형을 속이는 장면은, ‘편애하는 어머니와 거짓말하는 동생’이라는 구도 때문인지 서로에게 진실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 후 복수심에 불타는 에사우와 야곱이 한집에 살 수 없었고, 야곱은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갑니다.
말이 친척이지 실상 라반은 갑질하는 악덕 고용주 같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사랑하는 딸(라헬)을 줄 것처럼 거짓 약속을 해 오랫동안 공짜로 부려먹어놓고서는, 다른 딸(레아)과 결혼하도록 강요했으니까요. 기껏 장자 상속권을 빼앗아 놓고선 남의 집에서 오랫동안 무임금 노동을 한 야곱의 처지를 우리는 현실에서 꽤 자주 만나게 됩니다. 독재자 같은 부모에게서 도망쳤는데 훨씬 더한 배우자를 만났다든가, 비인간적인 직장 문화가 싫어 자영업을 택했는데 고객 중엔 더한 진상들이 많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든가, 억압적인 한국이 싫어 이민을 갔는데 인종차별로 몸과 마음이 지쳐 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셋 이상만 모이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라는 역동이 생기기 마련이고, 또 그 역학관계라는 것이 항상 바뀌기 마련이라, 아무리 애써도 아무도 완벽하게 권력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항상 승자일 수는 없습니다. 나만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야곱이 가족과 화해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하느님을 만나 힘을 겨루다 엉덩이뼈를 다치고, 이후 절뚝거리게 되는 상황은(창세 32,24-33), 인간이 누군가를 이기고자 권력 콤플렉스에 사로잡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상징적 경고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엉덩이뼈는 대들보처럼 직립을 가능하게 합니다. 자기 능력 이상으로 누군가와 대척 관계에 있거나 누군가의 자리를 욕심을 낼 경우, 삶의 대들보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야곱은 우여곡절 끝에 화해와 용서를 거듭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가나안 땅에 안장되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야곱의 삶을 우리 안의 권력 콤플렉스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글 |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