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루카 1,32)”께서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해 가장 작은 존재가 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 주님이라고 부르는 분, 거룩하신 분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분께서 한 소녀를 어머니로 받아들이십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된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것을 마리아는 순명하고 믿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셨습니다, 당신의 아드님이 인간이 되어 인간을 구원하기를.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러한 계획에 자신을 필요로 하심에, 그리하여 자신을 선택하심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았습니다. 자격이 없음에도, 능력이 없음에도, 비천한 주님의 종일 뿐임에도 자신을 통해 이루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마리아는 기뻐 노래합니다.
우리가 마리아와 같은 ‘모양’으로 예수님을 잉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자리 잡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나의 삶 속에서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기를’,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기를’,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실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매일 죄를 지으며 살고 있음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이 나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믿으면 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나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마리아는 모범이며 희망입니다. 본받아야 하는 분이며, 우리에게 우리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본기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우리가 마리아처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며’ 살아간다면, 때가 되었을 때 우리도 마리아가 누린 그 영광을 함께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글 | 원우재 요셉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