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외고에서 상위권 성적이던 학생이 전교 1등을 한 직후 자기가 살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긴 유서에는 “이젠 됐어?”란 네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부모가 성적에 대해 화를 낸 것에 아이가 목숨을 걸고 부모에게 화를 낸, 슬프고 가슴 아픈 사건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에서는 중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성적’이란 두 글자에 아이도, 부모도 목을 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성적이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는 집안의 분위기가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의 관건이 되곤 합니다. 성적이 부모 기대처럼 나오지 않을 경우 가장 흔히 생기는 감정이 ‘화’입니다. 노력하지 않아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며 아이를 나무라고 화를 냅니다. 그럴 경우 아이가 반성하며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에 대해 화가 나고, 결과만 보고 자신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부모에게도 화가 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적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에 화가 납니다.
이런 아이의 심정을 짧은 시로 표현한 글이 있습니다. 이철수 판화가의 ‘가난한 머루송이에게’란 시입니다. 몇 알 달리지 않아 시원찮아 보이는 머루송이 그림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겨우 요것 달았어?’ ‘최선이었어요….’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성적이라는 결과를 떠나, 그 과정에서 애쓰는 마음을 누군가는 헤아려주고 다독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바로 부모입니다.
어느 날 어머니 한 분이 상담실에 오셔서 IQ가 90이 채 넘지 않는 아들에게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잘 지내는데, 전교 1, 2등을 다투는 딸에게는 걸핏하면 화를 낸다고 했습니다. 이 어머니가 화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들에게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딸에게는 너무 높은 기대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대는 화를 나게 하는 주범이었습니다. 이후 어머니의 딸에 대한 부당한 화는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됐어, 아이한테 더 뭘 바라. 우리도 그때는 힘들었잖아.”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 가운데 한 명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글 | 이서원 프란치스코(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