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돈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사람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합니다.”
10여 년 전 외국의 한 콘퍼런스에서 인상적인 연설을 들었습니다. 재클린 노보그라츠라는 사회적 기업가의 연설이었습니다. 노보그라츠는 르완다에서,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자금을 투자하는 금융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다루는 투자자가, 돈은 수단이고 사람이 목적이라고, 사람이 없다면 이익도 없다고 강조하는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오래전의 그 연설이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우리 동네에서 텅 빈 가게 자리를 발견한 뒤였습니다. 은퇴 후 창업한 부부 사장님이 10년이나 운영하던 제 단골 커피전문점이 반년 전까지 입주해 있던 자리입니다. 매출이 줄어 임대료를 좀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건물주가 응답하지 않자 문을 닫았습니다.
그 집은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당장 임대료를 조금 내려주는 게 부담이 되는 건물 소유주였다면, 왜 지금까지 집을 비워두고 있을까요? 알고 보니 임대료를 낮춰주는 게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라, 임대료를 내려주면 건물값이 내려갈까 두려워 요청을 거절했던 모양입니다.
그 집뿐 아닙니다. 요즘은 도심 한복판의 상가나 사무실 자리도 여기저기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임대료나 건물값은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가격이 내려가면 누구라도 유용하게 사용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부동산이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바람에,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땅의 가치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쉬도록 해주면서 나옵니다. 경제학에서는 ‘토지, 노동, 자본’을 생산의 3요소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새겨져 있습니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땅의 가치도 없다는 뜻입니다. 요즘 세상은 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땀흘려 일하고 싶은데 일할 공간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사실 많은 공간이 비어 있는데 말이지요.
노보그라츠의 연설과는 반대로, 우리 사회는 사람이 돈을 위해, 사람이 부동산을 위해 일하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땅값은 치솟고 땀 값은 떨어져가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늘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강조하십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땅보다 땀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도록 기도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글 | 이원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LAB2050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