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든 수도회든 이정표로 삼을 선배 회원들이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몸담은 살레시오회의 한 원로 신부님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해집니다. 신부님은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자기 관리를 잘하셔서 아주 건강하십니다. 또한 아직도 총기가 넘치셔서 그 어려운 번역도 척척 해내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존경스러운 부분은 성체조배하시는 모습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사목활동으로 바쁜 후배들의 몫까지 대신해 틈만 나면 성체 앞으로 달려가십니다.
성체성사의 은총을 온종일 연장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성체조배가 요즘에는 점점 약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수시로 경당 앞을 들락날락하면서도 성체조배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성체조배의 끝판왕이신 선배 신부님을 떠올리며, 그래도 요즘은 오랜 시간은 아니어도 살짝살짝 성체 앞에 머물다 지나갑니다.
성체조배, 엄청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별것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의 가장 큰 어른이신 주님, 내 인생의 주인이자 동반자이신 주님께 문안 인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을 건네고, 또 침묵 속에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포르투갈 출신 살레시오 협력자 복녀 알렉산드리나 마리아 다 코스타는 성체조배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억울하게 전신마비 환자가 되어 30년 세월을 꼬박 작은 침대 위에서 보내게 되었지만, 끊임없는 성체조배를 통해 성덕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녀는 매일 마음으로 전 세계 감실을 방문하여 성체조배를 하였습니다. “큰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 적막한 밤 시간에 저는 하늘을 관상(觀想)하러 여행길을 떠납니다. 모든 것이 무(無)이며 저에게는 모든 것이 죽었습니다. 내 창조주의 위대함과 그분의 무한한 힘만이 저의 영을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나를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은총과 사랑을 주기 위하여 나는 밤과 낮 감실 안에서 기다린다. 하지만 지극히 적은 사람만이 온다. 나는 너무나 외롭고, 버려져 있으며, 상처를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감실 안에 내가 살고 있음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악담을 한다. 믿는 다른 이들조차 마치 내가 감실 안에 없는 것처럼 나를 방문하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는다”(주님께서 복녀 알렉산드리나에게 하신 말씀).
토마스 머튼 신부님 역시 성체조배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교회 전례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체성사로부터 흘러나오는 지고하고 순수한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지존하고 거룩하신 성체를 관상하고 찬미하는 것입니다.”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