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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가르침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07-30 14:29:53 조회수 : 698

고2인 둘째가 엄마에게 면도기를 사달라고 했나 봅니다. 작업실에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에게 관심을 좀 가지라고. ‘아빠가 미리미리 면도기도 골라서 사놓고, 면도하는 방법도 좀 알려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화를 참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작업실에 있다가 뜬금없는 면박을 당하고 나니 화가 나,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아들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에게는 먹히지도 않는 화를 내며, ‘왜 아빠에게 미리 말하지도 않고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해서 아빠가 혼나게 만드느냐’하며 따졌습니다. 아들은 웃으며 오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단지 면도기를 사달라고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면도기를 사달라는 말이 엄마를 그렇게 화나게 하는 말인 줄 몰랐다고도 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들으며 정작 오해는 내가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면도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서 서운하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웃으면서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웃고 있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릴 때 아버지께 들었던 면도하는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아빠에게 면도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너에게도 알려 줄까?” 아들은 알려 달라고 했고, 나는 아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아주 간단해. 몇 번 베이다 보면 저절로 잘하게 돼. 그게 다야.” 

내 아버지의 면도 방법을 들은 아들은 또 웃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웃었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할아버지의 방법은 무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삶의 여러 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일일이 말씀해 주지 않으십니다. 

그건 아마도 아버지의 면도 방법처럼 그 정도는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글 | 강신성 요한(소소돌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