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리터가 채 안 되는 전기 주전자에 물을 붓고, 주전자가 물이 다 끓었다고 알려주면 그 물을 전용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다시 옮겨 담고, 마지막으로 주전자 안에 보리차 한 팩을 담가 놓으면 도장가게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렇게 만든 보리차를 해가 있는 낮 동안에는 따뜻한 차로 마시고, 남은 보리차에서 온기가 사라지고 나면 플라스틱 물통에 옮겨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리고 그렇게 냉장고에 보관한 보리차를 달이 지나가는 밤 동안에 조금씩 아껴 마신다. 새벽이 되면 보리차가 보릿고개를 맞고, 아주 잠깐 생수를 마시며 아침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아무리 짧아도 길고, 그 순간의 기다림이 가끔은 그리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어릴 때 어머니는 늘 커다란 주전자에 보리차를 끓여 놓으셨다. 주전자의 보리차가 식으면 오렌지 주스가 들어있던 병들에 가득 가득 나눠 담았고, 그 병들을 냉장고에 넣어 두셨다. 그리고 누구의 어떤 수고로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나는 매일 냉장고에 있는 보리차를 꺼내 마셨다.
한참 시간이 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문득 냉장고 안의 보리차가 떠올랐다. 그리고 알았다. 매일 냉장고에 보리차를 만들어 놓은 천사가 바로 나의 어머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부터 나는 보리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리차를 끓이는 일이 생각보다 귀찮았고, 보리차가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도 지루했다. 이 귀찮은 일들이 익숙해지는 동안 어머니는 늘 내 마음속에서 보리차 끓이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물에 보리차를 너무 많이 넣지 말라고, 보리차를 너무 오래 담그지 말라고, 물병에 담기엔 보리차가 아직은 뜨거우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그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하느님 나라에선 엄마가 다시 옛날처럼 직접 보리차를 끓여 줄게.”라고 하신다.
글 | 강신성 요한(소소돌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