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불린 故이태석 신부님을 2004년에 처음 뵈었습니다. 수원교구 제3대 교구장이신 최덕기 주교님 비서 신부로 일할 때였는데, 어느 날 주교님께서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는 이태석 신부님이 휴가차 한국에 오시면서 들르기로 했으니, 신부님이 오시면 주교관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업무를 보느라 주교님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비서실로 들어오셨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그는 수줍은 얼굴로 “주교님을 뵈러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교우분인줄 알고 “주교님은 굉장히 바쁘신데, 혹시 약속을 하셨나요?” 하고 물었고, 그는 “이태석 신부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주교님의 말씀이 떠올라 얼른 주교님 서재로 안내했는데, 그때 저는 신부님의 크고 맑은 눈을 처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습니다. 면담을 마치신 주교님께서는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태석 신부님이 수단에서 얼마나 고귀한 일을 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원교구에서도 수단으로 사제를 파견하려는데, 도움을 받고 싶어서 이태석 신부님께 이메일을 보냈더니 흔쾌히 받아주셨다. 한국에 나올 때 만나기로 해 오늘 방문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태석 신부님의 크나큰 업적과 안타까운 선종이 영화 ‘울지마 톤즈’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작년 이태석 신부님 선종 10주기를 맞아, 신부님의 삶을 다룬 새로운 영화 ‘부활’이 개봉했습니다.
신부님께서 수단에서 선교를 하시며 환자들을 돌보시니,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신부님이 방문하시는 마을마다 아픈 이들이 ‘너무 많이 모여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고’(마르 6,31), 그렇게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는데도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마르 6,34) 손을 잡고 한참 대화를 다정히 나누며 두려움을 없앤 후 치료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마르 6,34) 작은 학교를 짓고 가르치셨는데, 그 아이들 중 70명이 의사, 의대생 57명을 비롯해, 공무원, 대통령 경호원, 언론인 등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의사가 된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들은 이제 각 마을을 찾아다니며 스승 신부님처럼 ‘가엾은 마음이 들어’ 환자의 손을 잡고 한참을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다가 치료를 시작하고, 그 모습을 본 환자들은 이태석 신부님이 부활해서 오셨다고 눈물을 흘립니다. 마치 오늘 복음 장면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글 | 한영기 바오로 신부(성 라자로 마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