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피정하는 마음으로 대대적인 주방 청소를 했습니다. 폐기처분할 물건들,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들을 트럭에 싣고, 켜켜이 쌓인 먼지도 털어냈습니다. 이틀에 걸친 대청소가 끝난 후, 한결 깔끔해진 주방을 둘러보는 제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 각자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누군가를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 오랜 상처를 깔끔히 털어버리지 못하고 곱씹고 또 곱씹는 우리, 분노와 적개심을 차곡차곡 쌓아둔 우리를 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답답하고 착잡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깨끗하게 정리정돈된 우리의 영혼을 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기쁘고 흐뭇하실 것입니다.
오랜 세월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하느님의 마음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우리를 향한 측은지심과 연민으로 똘똘 뭉친 마음, 우리를 향한 불타는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곧, ‘예수 성심’(聖心)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 7,37).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 이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교부들은 예수 성심을 모든 은총의 근원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서 구원의 생명수가 흘러나오며, 군사의 창에 찔린 상처입은 예수 성심에서 성체와 성혈을 나눠주는 교회가 탄생했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 성심 공경이 보편화되는 데에는 예수 성심의 사도,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님(1647~1690)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녀에게 발현하시어 살아 움직이는 당신의 심장을 보여주시며, 세상과 인간의 죄를 보속하는 방법으로 잦은 영성체와 매월 첫 금요일 성시간을 실천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성시간’은 말 마디 그대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인간의 배신으로 인해 상처입은 예수님을 위로해드리고, 죄인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구원의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예수 성심의 무한한 사랑을 묵상하면 됩니다.
본당에서 성시간을 보내도 좋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개인적으로 거룩한 시간을 보내시는 것도 권합니다. 예수 성심이나 성체성혈을 주제로 한 성가도 몇 곡 부르고, 수난 복음도 좀 읽고 묵상하고, 예수 성심 관련 유튜브 강의도 하나 듣고, 마무리로 감사 기도를 바치고,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얼마남지 않은 예수 성심 성월, 예수님의 권고에 따라 보다 자주 미사에 참여하여 정성껏 성체를 영하면 좋겠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하지는 못할지라도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성시간을 실천한다면, 예수님께서 참으로 대견해하실 것입니다.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