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일류 대학에만 들어가면 예쁜 아가씨들이 줄을 잇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류 대학에 가야겠다.’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너도나도 더 높아 보이려는 친구들뿐, 더구나 허름한 단벌옷에 사투리 심한 저를 만나주는 아가씨도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부잣집 아가씨들이 줄을 잇는다고 했습니다. 고시 합격 후, 정말 많은 아가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찾는 여자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서로 상대를 쓰러뜨려 이겨야만 하는 법정에는 또 다른 회색빛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이런 것이었던가? 어느 날 법정을 나서면서 저의 고교 시절이 스쳐 갔습니다.
대도시 명문고 입시에 실패한 저는 씁쓸한 마음으로 후기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가 제 인생에 빛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살레시오 고등학교 교문에는 돈 보스코 성인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날마다 ‘돈 보스코’ 성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5월이면 성모 성월과 관련한 성가가 교정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저는 폐간 직전의 『가톨릭다이제스트』를 맡기로 했습니다. 대여섯 살 아이들 셋을 집에 두고, 아내와 함께 하루 24시간도 모자란 듯 책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로 보이는 시간이 저를 성숙하게 했습니다. 그동안 법조의 좁은 틀에만 갇혀,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만 집착하며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진리의 길, 사랑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나고 싶었던 ‘여인’들도 오히려 책을 통해 더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끔 아내에게 묻습니다. 변호사도 그만두고 이렇게 하다가 재산도 모두 잃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나는 국수를 말고 당신은 국수를 나르고…. 그러면 금방 손님들이 줄을 서게 될걸?” 그럴 때면 아내의 국수 맛을 잘 아는 저는 허름한 국숫집을 떠올립니다. 팔불출 같은 제가 싱글벙글 웃으며 손님들에게 국수를 나르는 광경을….
글 | 윤 학 미카엘(가톨릭다이제스트, 흰물결아트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