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어느 봄날, 방과 후 교실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제게 중학교를 어디서 다녔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신안 ‘도초’라는 섬에서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큰 소리로 “너는 큰 바다를 보고 자랐으니 큰 사람이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도시 출신 친구들에 비해 모든 게 뒤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심한 열등감도 느끼고 있던 터였습니다.
“큰 바다를 보고 자란 사람은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지.” 그 말에 저는 흑산도가 보이는 큰 바다를 떠올렸습니다.
초등학교 여름, 할아버지를 따라 뒷동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나지막한 야산을 넘으니, 깎아지른 바위들이 나타났고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든 순간, 파란 바다가 제 앞에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한참 동안 그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언어들이 제 가슴을 불사르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선생님은 “너는 바다만큼 큰 꿈을 간직하고 있지?”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격려는 솟아나는 샘물과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바다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망해가는 『가톨릭다이제스트』를 다시 일으켰다는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 직업이, 그런 칭찬이 나의 꿈일 수는 없었습니다. 나의 꿈은 비난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더 큰 꿈이라야 했습니다.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가져야 할 꿈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제게 바라셨던 꿈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십수 년 전 광주대교구 방림동 성당에서 평신도 강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사가 끝나자 머리 하얀 어르신이 황급히 성전을 나오며 흥분된 목소리로 “우리 학이 어디 있냐?”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30년 만에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보며 다시 어린 시절 바다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선생님은 하늘로 가셨지만, 그 사랑 깊은 격려는 지금도 끊임없이 제 꿈을 키우고 펼쳐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