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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밀알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06-04 11:10:20 조회수 : 715

오늘은 예수님께서 수난 전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성찬례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성찬례는 공동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하였듯이, 이 땅의 신앙 선조들도 혹독한 박해와 고난 속에서 그러하셨고, 교회는 언제나 성체성사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 14,22) 하신 주님께서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일깨워 주시고(루카 24,30 참조), 실의와 절망의 늪에 빠진 제자들에게는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하시며 “살아 있는 빵”(요한 6,51)으로 일상에 활력을 주십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28)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도들은 성체성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어릴 적엔 친구들과 노느라 밥때도 많이 놓쳤습니다. 와중에도 어김없이 “얘야, 밥 먹어라~” 하셨던 어머니의 음성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밥을 챙기시던 어머니의 사랑은 성장의 자양분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삶에서 겪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는 방편이 아닙니다. 습관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 생명의 말씀과 십자가의 아낌없는 사랑에 힘입어 이제는 내가 “파스카 음식”(마르 14,16)을 준비합니다. “달려야 할 길”(히브 12,1), 곧 참된 믿음과 영성의 길을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 빵”(요한 6,58)을 먹으며 빵이 쪼개져 나뉘듯 성찬의 일상을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요한 6,56 참조).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는 맹수형을 당하면서도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순교를 성체성사로 봉헌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다. 요즈음 먹고사는 게 전부인 양 복잡한 인간사지만, 세상엔 따뜻한 나눔과 실천이 더욱 절실합니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1요한 3,18)해야 할 때입니다.


글 | 이상선 요아킴 신부(교구 성직자국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