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도가 보다 성숙한 기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식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식별 작업을 하신 모습이 복음서 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열두 사도 선출 직전, 골고타 언덕으로 오르시기 전과 같이 중요한 일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식별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에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2-13).
기도 생활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식별, 그 의미는 명료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처한 위기 상황 앞에서 주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간하는 일이 식별입니다. 식별은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여정의 출발점입니다(「기도의 여정」, 남승택, 생활성서 참조).
저의 경우 인생의 중요한 기로 앞에서나 큰 결정을 앞두고 다음 세 단계에 걸쳐 식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① 멈춤.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의 종착점은 폐차장입니다. 가끔씩 연료를 충전하기 위해 주유소에도 들러야 하고, 부속품을 교체하기 위해 자동차 정비소도 들러야 오래도록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먼 길을 달려야 할 우리들입니다. 더욱 멀리 가기 위해서 가끔 가던 길을 멈춰야 합니다. 중요한 기로 앞에서는 좀 더 오래, 좀 더 진지하게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② 바라봄. 정비기술자는 정비소에 도착한 자동차의 보닛을 열어 꼼꼼히 부품들을 확인해봅니다. 그리고 교체가 필요한 부품과 엔진 오일 등을 교체합니다. 우리는 식별 기도를 통해 우리 인생의 보닛을 열고 우리 영혼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현재 손상된 부분은 어느 곳인지? 아직 튼튼한 부분은 어떤 곳인지? 미래를 위해 어떤 투자가 필요한지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③ 들음. 식별의 마무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영성 서적을 천천히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내 안에 가득 찬 자기중심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과감하게 내려놓을 때, 한 형제와의 진지한 대화 중에, 은근슬쩍 들려올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것을 그분 흐름에 내어 맡길 때, 그리도 애타게 갈구했던 주님의 자상한 음성이 명료히 들려올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홀로 마무리하는 식별의 위험성을 우려하시며 ‘공동 식별’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신앙의 선배들이나 영적 동반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일 역시 올바른 식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업입니다.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