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 예루살렘 순례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벌어진 작은 사건은 그분의 연대기에서 아주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사가들은 서른 살 이전 그분의 거취에 대해 한결같이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유일하게 이곳에서 소년 예수님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가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소년 예수님 실종 사건’입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식음도 잊은 채 이곳저곳 샅샅이 뒤지다가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아냈습니다. 아들을 되찾은 데서 온 기쁨도 컸겠지만, 성모님께서는 매우 속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들에게 묻습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
그 순간 소년 예수님께서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잠시 한눈팔다가 그랬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말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웬걸 한술 더 뜨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갑작스레 툭 튀어나온 예수님의 이 말씀, 어떻게 보면 예의 없는 말, 이유 없이 반항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버르장머리 없는 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말씀은 심오한 진리, 큰 의미를 담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혈육에 매여계실 분이 아니라, 인류 만민을 한 형제로 묶어야 할 큰 사명을 지니신 분임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작은 고을 나자렛에만 머무실 분이 아니라, 더 큰 바다로, 온 세상 방방곡곡으로 나아가야 할 크신 분임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예수님의 돌출 발언 앞에서 보여주신 성모님의 태도를 우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사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간직하였다.’라는 말의 의미는 분노를 겨우 참고 삭이며, 꽁하니 마음에 담아둔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이는 평생에 걸친 성모님의 기도 방식이었습니다. 아들 예수님으로부터 유발된 이해하지 못할 사건이나 언행 앞에서 성모님께서는 우선 침묵하셨습니다. 비수처럼 다가온 예수님 말씀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곰곰이 묵상하였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다는 말은 ‘그냥 참지, 그냥 웃고 말지.’라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아무리 이해해도 하지 못할 상황, 견디기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도 지속적으로 긍정하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겠다라는 표현입니다.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