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만남이 약속되어 있다면, 무엇을 준비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거나 예수님께 무엇을 드릴까보다는, 무엇을 청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정치인을 만날 경우에도 ‘무엇을 부탁해야 하나, 이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기회, 좋은 기회로만 있는 것은 아닌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딜레마’였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앞으로 함께 고생하십시다.’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 고생하셨으니 하느님께로 올라가십시오.’라고 할 것인지….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에도 그들은 다락방에 머물렀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심으로써, 딜레마에 빠진 제자들에게 답을 주십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더이상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것 앞에서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을 갖기 전이나 후나 뭐가 달라져, 세례를 받아도 내 주변에 달라진 것이 없네. 별다른 것이 없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세례를 받는 것은, 내가 바뀌겠다는 선택과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제1독서에 나오는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라는 말씀은 승천의 의미를 더욱 강조합니다.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은 제자들을 가리켜 갈릴래아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갈릴래아는 사막 가운데에 있는 호수이기 때문에 풍요로운, 먹고살 것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수탈도 많고, 사람들이 모여들기에 여러 복잡한 문제가 많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은 제자들을 ‘갈릴래아’ 사람들이라고 부름으로써,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황홀경에 빠진 이들에게 현실 삶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하느님에 대한 확신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대한 확신으로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땀을 흘려서 일하는, 정의와 진리가 바로 세워진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신비나 거룩함만을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을 남겨주셨습니다. 천사라고 추정되는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은 너희도 예수님처럼 저렇게 올라갈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땅은 버리고 극복해야 할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승리하시고 다시 오실 땅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내가 있는 이유는 하늘과 땅을 잇기 위해서입니다.
글. 김승만 마르코 신부(교구 홍보국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