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한 주점 앞에 걸린 커다란 입간판 문구를 보고 혼자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낮술 환영!’ 마음이 허전할 때, 그래서 술이 당길 때, 주야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오라는 사장님의 너그러운 초대에,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유형의 초대를 받습니다. 마음 설레는 초대, 마음이 껄끄러워지는 초대, 당장 달려가고 싶은 초대, 생각만 해도 부담스러운 초대….
루카 복음 1장 26절 이하에는 아주 특별한 초대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나자렛의 마리아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0-32).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초대는 너무나 엄청나고, 끔찍할 정도로 부담되는 초대입니다. ‘그렇게 하겠노라.’라는 응답으로 인해 다가올 고초가 만만치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담담하게 대답하십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틴어로는 “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 간단히 피앗(Fiat)이라고도 합니다. ‘피앗’은 성모님께서 당신의 생애에 걸쳐 되풀이해서 바치신 기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함께 바쳐야 할 기도의 모범입니다. 성모님은 틈만 나면 또 다른 도전, 또 다른 부르심, 또 다른 난감한 상황 앞에 계셨는데, 그때마다 계속해서 피앗이라고 응답하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의 피앗은 그 길이 분명 고통스러운 길,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 주님을 위한 길이기에 기꺼이 그 길을 떠나겠다는 의미에서의 피앗입니다. 끊임없는 피앗, 평생에 걸친 피앗의 결과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 새로운 성도(聖都) 예루살렘이 되십니다. 이제 성모님은 그 안에 메시아가 끊임없이 살아 계시는 계약의 궤가 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성모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 같은 분이십니다. 성모님의 얼굴은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가장 맑고 투명하게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이 되신 배경에는 끝도 없이 반복된 피앗 기도가 있었습니다.
돈보스코 성인께서는 당신 스스로 하느님의 손수건이 되기를 원하셨고, 후배 살레시안에게도 장상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손수건같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접든 펴든, 더러운 손을 닦든, 코를 풀든, 그저 주인의 손아귀에 든 손수건처럼 하느님의 손수건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아주 좋은 피앗 기도입니다.
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