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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낼까 말까?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05-14 10:59:11 조회수 : 750

마흔에 결혼해서 얻은 아들이 벌써 열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아들을 키우면서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힘든 순간이 많았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은 아직 한 번도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까운 분들이 거짓말이라고 하거나, 억지로 화를 참은 것은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화를 억지로 참은 것도 아닙니다. 비결은 단순합니다. ‘화를 낼까 말까?’ 하고 저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화가 나는 순간은 저 역시 여느 부모와 다름없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화가 나는 순간, 저는 습관적으로 ‘화를 낼까 말까’를 저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화가 나긴 하지만 화를 낼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화는 ‘나는 화’와 ‘내는 화’가 다릅니다. ‘나는 화’는 산에 불이 나는 것과 같아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는 화’는 산에 내가 불을 지르는 것과 같아서 피할 수 있습니다. 


화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생기는 나는 감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당연히 아들에게 화가 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일부러 작정하고 저를 곤란에 빠뜨리거나 상처를 주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서 떼를 쓰는 것뿐이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게임을 한 것뿐입니다. 저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저는 화가 나도 화를 낼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유아원에 다닐 때 일입니다. 아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번개맨’을 보며 소파에서 껑충껑충 뛰다가 번개맨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소파 밑에서 잠이 막 들려고 하는 제 위로 뛰어내렸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화가 나던지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순간 저는 아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얼굴은 번개맨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를 내는 대신, 너무 아프다고 아이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제 얼굴을 보고 미안해했습니다. 그것이 화를 낼 뻔한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그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역시 ‘화를 낼까 말까’를 스스로 물어보았기 때문입니다. 


‘화를 낼까 말까?’는 이성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가정의 달에 자칫 화로 달려가기 쉬운 감정에게 이성을 선물하면 어떨까요.


글. 이서원 프란치스코(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