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없는 기도 앞에서
삶이 고달플 때마다, 고통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마다,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때마다 펼쳐보는 최애 성경이 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 예언서’입니다. 어린 시절 소명을 받은 예레미야는 평생토록 고통을 친구처럼 끌어안고 살았던 예언자로 유명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서를 천천히 읽어 나가다 보면 저절로 큰 동정심과 측은지심이 밀려옵니다. 자연스레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은 별것도 아니로구나’ 하는 위로도 다가옵니다.
말빨이 제대로 먹히지도 않고, 가는 곳마다 천대받고 무시당하던 예레미야가 하루는 얼마나 괴로웠던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예레 15,10).
그가 사면초가 상태에서 바친 기도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당신께서 완전히 유다를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시온을 지겨워하십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저희를 치셨습니까? 평화를 바랐으나 좋은 일은 하나 없고 회복할 때를 바랐으나 두려운 일뿐입니다”(예레 14,19).
깊은 구렁 속에 엎드려 주님께 간절히 탄원하는 예언자의 기도가 참으로 솔직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주님께 아룁니다. 비록 하느님의 즉각적인 응답이 없을지라도 예언자는 탄원하고 또 매달렸습니다.
위대한 대 예언자들은 기도의 응답 여부와 상관없이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정성을 다 쏟아가며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도가 지닌 문제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바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바치고 있는 기도에 대한 정화와 쇄신 작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응답 없는 기도란 결코 없습니다. 다만 기도에 대한 응답은 때로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때로 한평생에 걸쳐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기도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을 기대하는 것처럼 위험스러운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 앞에 하느님께서는 자주 인간의 사고방식, 논리,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청할 것은 하느님의 성령이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