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당위적 신념을 공부하면서, 저 역시 이 신념을 기준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분노하였던 것이 패턴화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위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효약은 “그럴 수 있다.”라는 포용적인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을 알고 있다고 해서 바로 용서와 포용의 삶으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
어느 신부님은 ‘숨’은 창세기의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을 때 쓰인 표현이기에, 숨을 받은 제자들은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죽음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쳤던 이들이 자기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예수님 십자가를 통한 자비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은 새롭게 재창조된 사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자신 안에 내재된 신념을 바꾸는 것도 재창조의 영역이며,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굳게 닫아걸은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에게 부활의 기쁨을 알려주신 것처럼, 당위적 신념으로 무장된 나의 굳은 마음을 통과하여 용서의 삶으로 넘어가게 해달라는 지향으로 성령께 청원한다면, 부활하신 주님의 숨결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글 | 서용운 미카엘 신부(제2대리구 청소년1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