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다
주님의 자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탈출기 34장 6절과 7절 말씀인데요,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아래 반전이 나옵니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는 말씀입니다.
‘용서하되 벌주시는 하느님’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우리는 그분의 자비를 오해했던 것이죠. 사실 저는 체험을 통해 주님이 얼마나 자비로우신지 압니다. 친가, 외가가 다 구교우인 저희 집안은 식구 중 누가 냉담을 오래하면 영혼 구원도 못 하고 어쩔 거냐면서 안타까워합니다. 특히 오래 쉬고 있던 외숙부댁이 온 집안 어르신들의 기도 대상이었습니다.
외숙부는 사업을 하면서 아마도 오랫동안 신앙을 쉬었던 것 같습니다. 사업도 내려놓고 긴 투병 생활을 하여 혈액암 완치 판정을 받으셨지만, 하느님께 돌아오지 않았죠. 결국 수도자인 제가 나섰습니다. 다행히 삼촌은 따라주셨고, 1년 뒤 ‘자비의 특별 희년’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고해소를 나오는 외삼촌께 고해성사를 얼마만에 보신 것이냐고 여쭤봤습니다. 45년이라고 하더군요. ‘미세레레’(miserere : 라틴어 역 성경에서 ‘주여 나를 가엾이 여기소서’로 시작하는 시편 50편)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외삼촌의 병구완을 했던 외숙모가 폐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진 친척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죠. 그런데 치료 중 폐렴에 걸려 더는 어렵다고 하자, 사촌 동생이 도와달라고 제게 연락을 했습니다. 외숙모가 생을 마감하는데 딱 사흘 걸렸습니다.
그렇게 완고하셨던 외숙모의 병자성사와 교적 재생성, 장례미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외숙모 역시 긴 세월 냉담했지만, 주님의 온갖 축복을 다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큰일을 치르고 나서 온 집안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했습니다. 참 신기했어요. 하느님의 계획에 당신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두 분의 구원도 들어있었다는 사실이요. 오랫동안 친척들이 마음을 썼지만 움직이지 않으셨죠. 결국 하느님이 이기셨습니다!
글 | 천향길 베네딕타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