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돈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지하철 옆자리에서는 주식시장 이야기가 들리고, 카페 앞자리에서는 부동산 이야기가 들립니다. 동창들의 카톡방에서는 집과 땅과 주식과 비트코인 이야기를 빼면 대화가 이어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경제는 어려워지는데, 어쩐 일인지 땅값과 거대 기업 주가는 자꾸 치솟는다고 합니다. 큰 땅을 가진 사람들의 부는 더 커지고 있겠네요. 거대 기업 대주주인 억만장자들은 훨씬 더 큰 부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다들 억만장자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집 한번 장만해 보려고 월급을 모아두면, 사려던 집값은 훌쩍 뛰어올라 버립니다. 내가 산 주식은 늘 위태위태하기만 합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 그렇습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이미 밝혀냈었지요.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전 세계 데이터를 모아 보니, 돈이 돈을 버는 속도는 일해서 돈 버는 속도를 압도했고, 경제 전체가 성장하는 속도보다도 빨랐다고 합니다. 피케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돈 있는 사람만 돈을 벌 수 있는 ‘세습자본주의’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피케티는 동시에 희망도 이야기합니다. 수십 년 전, 돈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가 빨랐던 시대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돈의 가치보다 일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격차가 지금보다 작았고, 연대의식이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그런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부활을 믿지 않고 있던 것이지요. 사실 성경에서는 여러 차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무덤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돈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없으셨지요. 끊임없이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자신을 돈에 옭아매는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과 힘을, 돈을 사랑하는 데보다는 이웃을 사랑하며 연대하는 데 쏟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좀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도 좀 더 밝아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