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 곧 파스카 사건을 통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중개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성체성사를 세우신 최후의 만찬을 통하여 파스카 사건의 의미를 밝혀주십니다. 예수님의 파스카는 주님께서 항상 우리 안에 현존하시며 함께하심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파스카 사건은 바로 오늘 여기 십자가의 제사인 성체성사를 통하여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미사 봉헌이 힘든 시기이지만, 미사 참례를 통하여 성체를 모시어 주님과 하나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현존인 성체성사가 우리의 온 삶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주님을 통한 구원, 곧 주님의 파스카 사건을 향해 방향 지어져 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에 참여하여 그분과 더욱 깊은 만남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구원이며 신앙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매일 우리는 파스카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자 애쓰며 살아갑니다. 이는 성사 생활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사건 안에서 계속됩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자 노력하지만,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는 듯한, 그분이 보이지 않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찾지 않는 경우에야 하느님의 현존이 궁금하지 않겠지만, 그분을 뵙고자 노력함에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나름 선행에 힘쓰고, 성사 생활에 충실하고, 성경 읽기와 실천에도 최선을 다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피로와 핀잔 그리고 주변의 무관심과 차가움일 때, 우리는 주님의 부재를 느끼곤 합니다. 또한,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는데 청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주님의 부재를 느낍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과 더욱 깊은 사랑을 나누고자 노력함에도 주님의 부재를 느끼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이사 49,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체를 통해 보증되며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그분의 십자가와 성체를 바라봅시다. 들어 높여진 십자가에서, 자신의 사랑 전부를 담아 내어주는 성체에서, 그분은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 하느님은 부지불식간에 십자가와 성체로 더욱 뜨겁고 깊게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그러시기 위해 그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글 | 기정만 에제키엘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