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하느님이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되는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도래하였습니다. 구원의 때는 바로 성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리하여 그분은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르는 이들입니다. 곧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 주님” 하고 반복적으로 외치는 이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을 배우고 따라 사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우리 삶의 모습은 성부의 뜻에 그리스도처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 이것이 바로 성사를 사는 것이요 성사적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분별과 식별의 여정입니다. 더 나은 미래와 지금의 공정과 정의를 위해 우리는 과거와 현실의 여러 상황을 분별합니다. 이를 위해 “만약 이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셨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라는 기준을 가지고 지금을 분별하곤 합니다. 나의 욕심이 아닌 성부의 뜻을 위하여, 나를 치켜세우거나 나의 편의가 아닌 성부가 원하시는 공정과 정의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눈으로 지금을 바라보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원한 생명의 근원으로 섬기며 하느님과 그분의 삶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현실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부의 뜻을 먼저 찾고 그 뜻에 그리스도처럼 온 힘과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순종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수시로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마다 먼저 내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기준이, 내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욕심이, 다른 이들을 내 아래에 두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밀려옵니다. 실제로 성부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기보다 내 몸에 밴 습관대로 자연스럽게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순종’이라는 그리스도의 삶이 자리하기가 너무 어렵고 힘듭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 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내 자존심이 어떤 것보다 커지기를 바라는 현실에서, 순종이란 단어는 몇몇 성인·성녀의 삶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말처럼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름으로써 성부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강한 도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하는 이들을 아버지께서 존중’(요한 12,26)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세상이 아닌 성부께서 순종하는 나를, 우리를 존중해 주고 계십니다. 또한, 오로지 아버지 뜻에 순종하셨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순종의 십자가를 지고 앞장서 가십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일어나 당당하게 십자가의 순종을 섬기고 따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