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모든 기도의 기본입니다!
비안네 신부님께서 아르스 본당에서 사목하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고해소로 가는 길에 한 농부가 벌써 몇 시간째 텅 빈 성전 안에서 홀로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궁금했던 신부님께서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서 “형제님, 오랜 시간 동안 하느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농부의 대답에 신부님께서도 큰 깨달음을 한 가지 얻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는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은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기도의 참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도 이른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 자주 홀로 외딴곳으로 가셔서 아버지와 마주 앉으셨습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예수님께서는 침묵 속에 아버지를 바라보셨고, 아버지께서도 침묵 속에 예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잦은 침묵 기도를 통해 참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지속해서 찾고 추구하셨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홀로 기도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오직 나와 주님 단둘만의 시간을 갖는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적 생활 안에서 침묵이란 단순히 말 없음이 아닙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입만 꾹 다물고 마냥 앉아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침묵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떠들썩한 기도나 불필요한 말은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말없이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저 그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분 앞에 앉아있기만 해도 만족스럽습니다.
연못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폭우로 진흙이 많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당연히 연못이 흐려졌겠지요. 원래 연못 안에는 크고 예쁜 비단잉어들이 살고 있었는데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비단잉어의 멋진 자태를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비단잉어를 찾기 위해 막대기로 이리저리 휘젓기보다는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천천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 작업이 바로 침묵입니다.
침묵은 모든 기도의 기본입니다. 침묵해야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침묵해야 자연의 소리, 형제의 요청,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침묵해야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침묵을 통해 영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침묵해야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침묵해야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