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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인사를 챙겨서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03-19 14:36:06 조회수 : 755

음반 녹음 차 벨기에의 한 도시로 이동해 서둘러 주일미사를 드리러 갔다가 그만 허탕을 쳤습니다. 홈페이지 공지를 보고 갔다가 굳게 닫힌 성당 문만 원망스럽게 바라봐야 했지요. 주일미사를 놓친 찜찜함에 근처 성당을 모조리 다시 검색했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도시여서인지 아름다운 성당이 많더군요. ‘녹음을 하는 여드레 동안 하루 한 곳씩 순례하며 기도로 준비해볼까?’ 어떻게 이런 신통한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도 기특했습니다.

사실 음반 녹음은 극도로 긴장되는 작업입니다. 여러 번 다시 해도 되니 수월할 것 같지만, 공연 때 같은 현장감이 살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하고, ‘이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는부담감에 오히려 실력 발휘를 못하기도 하지요. 정해진 시간 안에 작업을 마쳐야 하니 모두 극도로 예민해져 서로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요. 그럴 때 마음 둘 곳으로 성당을 찾는 건 어쩌면 그저 궁여지책인지도 모릅니다.

 

다음 날, 잠도 잘 잤고 목 상태도 괜찮았는데 막상 녹음이 시작되니 뭔가 평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계속 이렇게 긴장하면 안 되는데벌써부터 저녁 녹음이 염려되었어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오늘 방문하기로 한 성당으로 갔습니다. 성전 한쪽 편에 위치한 작은 경당에서 열 명 남짓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미사를 드렸지요. 모르는 언어지만 눈치로 전례를 따라가면서요. 적어도 입은 그러했는데 여전히 머릿속은 온통 녹음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평화의 인사순서. 늘 하던 대로 평화를 빕니다!” 하며 악수를 하는데 순간 머리에 번뜩 떠올랐습니다. ‘이 모든 분이 나에게 평화를 빌어주고 계시구나! 세대도 얼굴색도 다른 내게 이렇게 정성껏! 지금 내 마음에 그 평화가 얼마나 간절한지 아실리 없는데.’ 그때 바퀴 달린 의자에 몸을 기댄 한 어르신이 천천히 모두의 눈을 맞추며 말했습니다. 평화를 빈다고! 이미 조용해진 후였지만 멈추지 않고 마지막 한 명에게까지 정성껏 외치는 할머니의 평화의 인사는 용기로 울리는 큰 진심의 메아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어요. 그리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두려움이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을 나와서 보니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와있더군요. 녹음 스케줄을 바꾸려 했다고, 그런데 길거리 소음에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 거라 예상은 했다고.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전화기를 안 본 게 얼마나 다행이야? 하마터면 이 평화의 인사를 못 챙겨갈 뻔했잖아곧 다시 녹음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노래는 날개를 달고 사뿐히 날아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