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의 시간…. 우주의 시간
새벽 미사 가는 길, 탑골공원 벽을 따라 박스와 스티로폼 조각을 나란히 줄 세우는 몇몇 어르신들이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이게 뭐예요?”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점심에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배급받기 위한 줄이라고 했습니다. 미사를 마친 오전 7시쯤, 제법 많은 분이 줄 따라 앉아계셨고, 줄은 점점 더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분들, 점심 줄을 지금부터 서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에….
아침 식사를 하는데 강추위에 줄 선 이들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습니다. 그들 밥 한 끼의 시간과 지금 내 한 끼의 시간, 그리고 이 쌀 한 톨이 있기까지의 시간은 얼마일까? 그리고 이 한 끼에 연결된 모든 이들, 모든 것들, 이들을 잇는 시간의 맥락을 떠올려봅니다.
무료급식소의 긴 줄을 보고 아침밥 넘기기가 어려운 불편한 내 마음의 조각들 - 코로나19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곳이 줄어 추운 새벽부터 길게 줄 선 이들의 언 발걸음들 - 봉사자가 줄어든 급식소에서 엄청난 양의 식사 준비로 분주했을 손길들 - 밤잠 줄이고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새벽 배송했을 택배 노동자의 등짐들 - 유례없던 긴 장마에 벼 수확하는 날까지 수없이 내쉬었을 농부들의 한숨들.
그리고 조금 다른 차원에서의 시간들….
땅을 뚫고 싹을 틔우기까지 온 에너지를 쏟았을 한 톨의 쌀알과 뭇생명들 - ‘쌀’이라는 생물종을 이루기 위해 진화하고 역동한 우주의 시간들, 그 이야기들 - 그리고 태초의 찬란한 불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됩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 사랑으로 서로 엮여서 형제자매로 일치되어 멋진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모든 피조물을 위한 것으로, 우리를 형제인 태양, 자매인 달, 형제인 강, 어머니인 대지와 온유한 애정으로 하나가 되게 해 줍니다’(찬미받으소서 92항). ‘모든 생태적 접근은 가장 취약한 이들의 기본권을 배려하는 사회적 관점을 포함해야 합니다’(93항).
두 가지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면, 추운 새벽 무료급식소의 긴 줄을 이루는 이들의 현재는 우주 태초부터 이어진 지금 나의 시간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추위와 배고픔은 바로 내 고통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내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 안에 깃든 사회적, 역사적, 영적 맥락들을 잘 살펴보고, 이웃과 피조물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기꺼이 신앙적 투신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통합생태로 나아가는 여정’에 있는 우리의 신앙고백이며, 하느님께 드리는 온전한 찬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