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선물
성악 창법 중에 콜로라투라(Coloratura)라는 것이 있습니다. 목소리로 곡예를 하듯 음계를 높게 또는 낮게, 빠르고 자유롭게 오가며 고난도의 기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 아리아에서 그 진수를 들어볼 수 있는데요. 듣는 이들은 큰 희열과 스릴을 느껴 이에 열광하며 감탄하게 되지요.
유럽에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콜로라투라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한 메조소프라노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정말 재봉틀로 멋진 수를 놓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고 수려하게 해내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어려움을 모르는지 표정마저 여유로우니, 놀라움은 배로 커졌지요. 단둘이 이동할 기회가 생겼을 때, “너의 콜로라투라는 정말 엄청나서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분명 그녀도 제 칭찬에 기뻐할 것으로 생각했죠.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너의 칭찬은 고마워. 하지만 나는 내 뛰어난 콜로라투라 테크닉을 자랑하거나 칭찬받을 자격은 없어.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잘 되는,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주어진 재능이거든.”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타고난 것이니 내가 으쓱하고 자랑할 일이 못 된다?’ 들어보지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절대적인 기술임을 저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걸 자기 입으로 겸손하게 고백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겸손을 위장하거나 가식인 듯한 얼굴빛도 아니었는데, 정중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보아 칭찬을 들을 때마다 이같이 말했나 봅니다. 그 뛰어난 기교로 무대 위 조명을 한 몸에 받는 가수가 자기 자랑과 칭찬을 사양하다니요.
그런데 오늘 제2독서에서 아래 구절을 우연히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그 동료의 말이 오래 남아 곱씹곤 했는데요. 생각해보니 우리는 예쁘고 잘생긴 외모, 훤칠한 키, 타고난 몸매, 명석한 두뇌, 뛰어난 학습능력 등, 사실 노력해서 얻은 것보다 타고난 것을 더 뽐내기 좋아하고, 또 부러워하고 있더라고요. 과연 그 동료는 그때 이미 저 성경 구절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 동료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함께 떠올리며, ‘하느님의 선물’을 내 자랑삼아 어리석게 우쭐대지 않기로 다짐해봅니다. 자랑하려면 하느님을 자랑해야겠다고…. 우리가 그 선물로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신 그분’의 작품답게 살아야겠다고요.
글 | 임선혜 아녜스(성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