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하느님의 자리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5).
당신의 자녀를 해방과 자유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구원활동은 십자가의 약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약함은 우리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입니다. 곧 우리 구원의 길은 하느님의 약함과 어리석음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안에 우리를 받아들이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한 자리를 만들고자 스스로 약함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당신 사랑의 자리가 만들어지도록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약함을 먼저 보여주시며, 우리 또한 그 약함을 살아 우리 안에 당신 사랑이 스며들 자리를 만들도록 초대하십니다.
가난과 굶주림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쉽게 “아, 나도 저들을 도울 돈이 많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에 신음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저들을 도울 강한 힘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불의함 때문에 인권을 빼앗긴 채 숨죽여 아파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저들의 빼앗긴 권리를 찾아줄 강한 권력이 나에게 있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무언가를 더 갖거나 소유한 이후에 비로소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고자 하는 일은 결코 현재화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그 사랑에 다가설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우리에게 하느님은 엄청난 힘과 권력 그리고 재화를 가지고 위로와 희망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우리를 위한 사랑의 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 약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강한 힘과 권력이 아니라 스스로 약해지고 가난해지심으로써 우리를 당신 사랑 안에 참여케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넘치는 사랑의 희생과 약함이 우리에게 구원과 해방의 길을 열어줍니다. 이제 스스로 자신 안에 하느님 사랑이 스며들 자리가 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더 많은 것과 강한 것을 채운 후에 하느님 사랑이 우리 안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우리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바라보며 하느님 앞에 스스로 약해져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 안에 하느님 사랑이 흘러넘칠 자리가 생깁니다. 더 높은 곳과 화려함을 좇던 우리의 눈은 그 어느 것보다 강하고 지혜로운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약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안의 약해져감이 바로 하느님과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자리를 이룹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도록 스스로 십자가의 약함을 자신 안에 만들어가며 그 약함을 자랑합시다.
글 | 기정만 에제키엘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