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묵상기도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절박한 기도 지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와서 아무도 없는 소성당을 찾았습니다. 반나절 가까이 앉아 있으면서 그저 십가가상 예수님만 뚫어지게 올려다봤습니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거기 계시면 보기 좋을 텐데, 기쁘고 환한 표정이면 금상첨화일 텐데, 세상 참혹하고 치욕스러운 모습으로 못 박혀 계시니 은근 부담스러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고 수난당하시며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에 제자들의 실망이 컸을 것입니다. 공생활 기간 보여주셨던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메시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나약하고 가련한 한 사형수의 모습으로 전락한 예수님의 모습에 군중들을 슬슬 떠나갔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단말마의 고통을 겪으며 울부짖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 더는 능력도 기적도 발휘하지 못하시는 그분의 모습 앞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입니다. 더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분 앞에 다들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 더 곰곰이 묵상해보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상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게 아니더군요. 비록 외적인 사도직은 멈추셨지만, 영적인 사도직, 기도의 사도직을 계속하셨습니다.
성금요일 십자가 위에서 내려다본 인간들의 배신과 반역 앞에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비애는 엄청났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마음먹기에 따라 당시 골고타 언덕에서 벌어진 판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 끝까지 자신의 능력을 감추십니다. 극도로 자신을 통제하였습니다. 철저하게도 침묵하시며 그 모든 조롱과 모욕을 감내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침묵 가운데 순명하시며 깊은 묵상기도를 바치신 것입니다.
십자가 주변에 둘러서 있던 사람 중에는 도저히 용서 못 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종일관 침묵 속에 가만히 계시니, 아예 그분을 갖고 놀았습니다. 몇몇 군사들은 예수님을 완전 노리갯감으로 여기고 놀려댔습니다.
그런 악한들의 몰지각한 행동 앞에 보여주신 예수님의 기도가 정녕 놀랍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