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위에서 바라본 나
제가 사는 베를린에는 24시간 동안 열려있는 성당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성체 현시가 되어있는 이 ‘성 클레멘스 성당’에서는 매일 두, 세 대의 미사와 로사리오, 자비심을 위한 기도를 정해진 시간에 바치죠. 또 마음이 힘들 때면 언제든 성전 뒷벽에 마련된 벨을 눌러 고해나 상담을 청할 수 있습니다.
열심한 후배가 이곳을 알려주었을 때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몹시 반가웠습니다. 독일에서 매일 미사가 있는 성당을 찾기란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성당의 첫인상은 ‘음산함’이었습니다. 그동안 다니며 본 유럽 교회들의 화려함이나 장엄함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따뜻함마저 없다니. 볕도 잘 안 들고 조명도 어두우니 우울하게까지 보였어요. 그래서인지 이곳에 오가는 사람들도 그리 보였습니다. 번듯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러 성당에 나오진 않았지만 그 분위기는 제 마음에 뭔지 모를 불편함을 낳았어요.
그들은 모두 간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쩜 그 모습이 그들을 가난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같았어요. 무릇 사람은 간절함이 없어야 쿨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건데, 그걸 모르거나 개의치 않는 것처럼 오로지 확신에 찬 믿음으로 온전히 매달리고 기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 사이에 비슷한 듯 다른 제가 있었습니다. 남보기 구차하게 속내를 드러내기가 싫었던지 그동안 저는 ‘그저 무언가를 찾고 있는 중’이라며 시쳇말로 ‘시크하게’ 마치 구경꾼인 양 성당에 적당히 폼나게 발을 들였다가 빼기를 반복했었죠. 한동안 머물다 나오며 생각했습니다. ‘과연 자주 오게 될까? 성당 문이 늘 열려있는 건 고맙기 이를 데 없지만 이 분위기는 좀…’.
그런데 다음 날 저는 뭔가에 홀린 듯 다시 클레멘스 성당으로 갔습니다. ‘다시 봐도 같은 분위기인데 내가 여길 왜 또 온거지?’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으로 멀찌감치 앉아 제대 위의 성체를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문득, ‘저 제대 위에서 보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거꾸로 저 먼 제대로부터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저야말로 참 없어 보이더군요. 뭔가 간절해 보이고요. 네, 실은 마음이 몹시 가난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마음속 간절한 가난함을 인정하고 머리 숙여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보니 큰 제대 벽화 속 예수님이 보입니다. 다가오는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인자하게 맞고 있는 ‘착한’ 목자 예수님!
가난한 마음만 남은 덕에 장사꾼이나 환전꾼처럼 그분께 쫓겨날 일을 면한 저는 드디어 그곳에 어울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글 | 임선혜 아녜스(성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