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란…
저는 명동 성당 옆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종교 시간도 있었고, 선생님 중에는 수녀님도 몇 분 계셨습니다. 어린 여자 중학생인지라, 친구들과 함께 수녀님들 머릿수건에 대해서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무실 때도 쓰고 계실까? 머리는 감으실까? 머리모양은 어떠할까? 등 말입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여름 캠프를 갔는데 수녀님의 ‘주무실 때 모습’을 보겠다고 몰래 친구 몇 명과 함께 달려갔었던 개구쟁이의 추억도 있네요. 무얼 봤고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까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어릴 때는 그랬습니다. 선생님들은 화장실도 안 가시는 줄 알았죠. 선생님, 신부님, 수녀님 이런 어르신들에게는 경외심과 함께, 그분들의 말씀은 꼭 들어야만 하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 말씀은 모두 옳고 그분들은 실수하지도 않으며 항상 바른길만 가시는 분들이다.’라는 이상적인(?)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길에서 만나는 ‘어떤 경찰 아저씨’보다도 제 나이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어른’ 혹은 ‘성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생님, 성직자인 사람은 없는 것처럼, 저나 그분들이나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보편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의식주가 필요하고 생물학적인 인간의 본능이 있고 욕구가 있는 사람 말입니다. 물론 그분들은 신분에 맞는 타당한 교육과 쉽지 않은 수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목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소양을 갖추셨지만, 여전히 실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사실 요즘은 같이 늙어가는 그분들이 좋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신부님과 나누go, 신나go’를 진행하면서 네 분의 신부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부님들도 과거에는 연애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고, 열받으면 이단 옆차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인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서 더 좋더라구요. 피끓는 20대를 보낸 신학교 기숙사 얘기를 듣노라면 ㅎㅎㅎ 재밌습니다. 친구 같은 신부님, 수녀님을 통해 하느님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글 | 류시현 소화데레사(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