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을까
여러 해 전 평창에 홍수로 둑이 범람하여 둑 주변 마을이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몇 년간 같은 동네에 물난리가 났습니다. 물이 다 빠져나간 후 어릴 적부터 고향을 지키던 어르신들이 물이 지나간 자리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말했습니다. “원래 길대로 갔다. 원래 길대로.” 원래 물이 지나가던 길을 큰물이 그대로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흐르던 물길을 무시한 채 사람들이 반듯하게 이리저리 잘라 만든 제방이 넘쳐 큰 물길이 들이치자, 속절없이 옛 물길대로 물이 흘러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좋지 않은 일과 뜻대로 안 되는 사람 관계는 평창에 물난리가 난 이치와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일의 이치와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처음에는 내 뜻대로 되어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일은 어긋나고 사람과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마련입니다.
얼마 전 출간한 ‘나를 살리는 말들’에 죽어가는 정원수 이야기를 썼습니다. 새로 집을 사고 정원을 꾸민 집주인이 정원수에 물을 정성껏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무가 죽어가 조경사를 불러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물을 안 주어서라고 했습니다. 집주인이 매일 물을 주고 있다고 하자, 조경사는 얼마나 주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바가지씩 주고 있다고 했더니 조경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나무는 한 양동이로 물을 듬뿍 주어야 하는 나무예요. 한 바가지씩 주면 안 주는 것만 못해요.” 주인은 이 말에 크게 반성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무도 이런데 우리 아이와 아내는 어떨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나에게 원하는 사랑이 한 통인데 나는 한 바가지만 주면서, 이만하면 애비노릇 제대로 한 것이 아니냐고 자족하지는 않았는가. 아내가 나에게 바란 사랑도 한 통인데 한 바가지만 주면서 생색내지는 않았을까 반성을 했습니다.
살다 보면 ‘왜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을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과 현실에 관련된 타인에게 화를 내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세상일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걸까요? 많은 경우 세상일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 뜻대로 안 하며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 생길 때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고, 현명한 사람은 나의 기준과 행동을 바라봅니다. 물길을 따라 제방을 내면 근심할 일이 줄어듭니다. 정원수가 원하는 물 한 통을 주면 나무가 잘 살아납니다. 내 뜻대로 안 될 때 나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글 | 이서원 프란치스코(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