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자 하니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나병 환자의 치유 이야기’는 세 가지 장면으로 전개됩니다. 나병 환자의 외침, 예수 그리스도의 응답 그리고 경이로운 치유.
무릎을 꿇고 치유를 청하는 나병 환자에게 주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이란 ‘다른 이와 함께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함께 하는 마음으로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십니다. 여기서 주님의 자비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모든 장벽을 넘어섭니다. 모두가 멀리하는 나병 환자와 거리를 두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말로만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하시지도 않습니다. 또한, 당신의 제자들이나 누군가를 시켜서 치유하시지도 않습니다. 율법으로는 분명히 만져서는 안 되는 그와 직접 접촉을 하십니다.
율법에서는 나병 환자를 만지는 사람 역시 불결해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분의 거룩한 손은 나병으로 불결해지지 않았고, 나병 환자의 몸은 그분의 거룩한 손으로 인해 깨끗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불결한 나병 환자를 만지신 것이 아니라, 가엾은 마음과 함께 거룩함으로 가득한 당신의 손을 건네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을 주십니다. 우리가 지닌 아픔과 고통에 대한 어떤 가르침만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애정과 연민이 가득한 몸짓으로 우리를 감싸주십니다. “나에게서 너 역시 제외될 수 없다. 너 또한 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라고 분명히 표현하십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라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시도록 그분께 맡겨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그분에게 강요하거나 내가 원하는 것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하고자 하시면”이라고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 1,41)라는 주님의 말씀은 다른 누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나병 환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시는 대답입니다. 너보다 더 내가 네 몸이 깨끗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을 주님께서 더욱더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진정 주님께서 우리를 원하시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구원을, 우리의 치유를 바라지 않으신 적은 한순간도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사랑을 가슴에 담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글 | 안민석 베드로 신부(교구 청소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