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안에서…
저희 엄마는 독실한 장로교 가정에서 자란 분이십니다. 제가 기억하는 외증조할머니는 항상 성경책을 읽고 계셨구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외할머니도 저희를 만날 때면 항상 손을 잡고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며 기도부터 하시던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그랬던 엄마가 결혼 후에는 무교이던 아빠를 따라 쉬고(?) 계셨는데요. 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아빠에게 입교를 권하셔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제가 5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전 소화데레사, 둘째는 리타, 셋째는 루시아, 그 이후로 태어난 동생들은 세실리아와 로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열심이신 부모님 덕분에 모종의 압력으로 성당은 빠지면 안 되는 곳이 되어버렸지요. 그 당시 저희 가족이 다니던 성당이 산 위쪽에 있어서 어린이 걸음으로 30분은 가야 했고, 어린이 미사는 토요일 오후였던지라 토요일에는 학교 친구들과의 놀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성당에 가야 했으니까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는 성경학교가 최우선이었습니다. 호주로 이민을 간 후에는 매일 저녁 가족이 모여서 매일미사책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물론 그때의 제가 기쁜 마음으로 은총이 충만해서 기도를 하고, 성당에 갔던 것은 아닙니다. ‘안 가면 혼나니까’의 강제성도 있었구요. 따라가다 보니 습관처럼 되어버린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란 제 자매들이 이제는 모두 성장해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제겐 모두 6명의 조카가 있습니다. 레오, 클레어, 조에, 라헬, 아바, 아이다노. 저는 어린 조카들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장래 신부님이 되고 싶다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뒷모습에서는 거룩함이 느껴집니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식사 전 기도를 시작하는 조카를 보며, 저는 밥 먹으려고 들었던 숟가락을 슬며시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거제도로 여행을 갔는데, 주일학교 숙제라며 그곳에서도 성당을 찾아 매일미사를 가더군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큰이모인 저보다도 스스로 하느님을 찾아가는 조카들이 놀랍습니다. 저의 어릴 때와는 너무 달라서 말입니다. 조카들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제게 당신을 보여주시려나 봅니다.
요즘 코로나라는 녀석 때문에 성당 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잊지 않고 단순한 습관처럼이라도 그분 안에서 살고만 있다면 분명 언젠가는 놀라운 그분의 뜻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믿습니다.
글 | 류시현 소화데레사(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