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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문화를 세우는 법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02-05 10:31:50 조회수 : 811

돌봄의 문화를 세우는 법



올해 벽두, 영하 18도의 한파가 들이닥친 어느 날이었습니다. 다섯 살 아이가 내복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경찰은 아이를 혼자 두고 집을 나선 엄마를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입건해 조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기사를 보고 엄마를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는 혼자 돈을 벌며 아이도 돌봐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일할 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일을 해야만 정부의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 8시간 빠짐없이 출근하면 월 120~14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 추운 날에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집에 두고 자활 근로를 하러 갔습니다. 그때 무료해진 아이가 집 밖에 나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내복 차림의 다섯 살 아이를 한파 속으로 내몬 것은 엄마가 아니라 우리 사회였습니다. 이 사회가 그 엄마에게, 일하면서 아이도 잘 돌보는 선택을 아예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우리 사회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근로가 아니라고 무시했을까요? 왜 아이를 두고 집 밖으로 나와야 근로를 하는 것이라고 인정할까요? 우리가 돌봄을 무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2111일 제54차 세계 평화의 날에 평화의 길인 돌봄의 문화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발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모든 것을 바쳐 가장 낮은 곳에서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연을 돌보고,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기후위기와 불평등이 눈앞에 닥쳤다고 교황께서 지적하셨습니다.


우리 사회에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점점 늘어납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아프고 연세 많은 어르신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사회구조 탓에 돌보고 싶어도 돌볼 수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파 속 아이를 혼자 두고 출근한 엄마도 그들 중 한 분이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더 많은 건물을 짓고 자동차를 만들고 물건을 파는 일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말 가치 있는 일은 주변을 잘 돌보는 일입니다. 돌볼 힘을 가졌다면 부자입니다. 돌볼 기회를 허락받았다면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주변에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샅샅이 살피는 것, 내게 돌볼 힘이 남아 있다면 누구라도 좀 더 돌보는 것, 정부와 기업이 자연과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데 좀 더 힘을 쓰도록 요청하는 것. 이런 일부터 시작해 돌봄의 문화를 다시 세워나가야 할 때입니다.


글 이원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LAB2050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