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신앙의 동거’(마태 14,22-34)
오늘 복음 속 장면은 오병이어의 드라마틱한 나눔(마태 14,13-21 참조) 이후, 다시 평온을 되찾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분주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외딴곳을 찾으셨고, 제자들은 스승보다 먼저 ‘타브가’ 지역을 떠나 북쪽에 위치한 ‘카파르나움’과 ‘벳사이다’ 근처를 향해 배를 저어나갑니다(요한 6,16; 마르 6,45 참조).
예수님께서 동석하지 않은 배는 처음에 순항하는 듯했지만, 한밤중에 들이닥친 맞바람과 너울성 파도에 결국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제자들이 탄 배에 다다랐을 때는 제자들이 사투를 벌이느라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삼킬 듯 일렁이는 파도, 난파선처럼 기울어지는 배. 이 상황에서 누군가 거친 호수 위를 걸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다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령’으로 오인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도, 그들은 눈앞의 스승을 뵙고도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루카 24,37 참조). 슬픔과 절망으로 제자들의 내면이 가리어진 상태입니다.
어둠, 강풍, 파도, 난파와 같이, 이번에는 내면 ‘밖’의 여러 갈등 상황이 제자들을 쉴새 없이 몰아세웁니다. 다급해진 제자들은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내면의 눈이 가리어져 바로 곁에까지 다가온 스승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처럼 내 존재 안팎을 둘러싼 여러 난항이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세상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 14,27)
예수님의 이 한 마디가 잠들었던 ‘내면의 눈’을 다시 뜨게 합니다. 비로소 삶의 악조건에서 다시 고개를 들어 그분을 천천히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오너라!”(29절)
베드로에게 하셨듯이 우리 각자에게도 용기 내어 당신 곁으로 ‘다가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이처럼 ‘신앙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사가 평온할 때는 내 신앙의 넓이와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크나큰 어려움과 직면할 때, 과연 나는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쉽게 좌절하고 괴로워만 하는지,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이를 담대하게 극복하려고 애를 쓰는지 분명히 판가름 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는 신앙은 절체절명의 위기일수록 전화위복의 값진 원천이 될 것입니다.
글 | 박현창 베드로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