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그리고 함께
일전에 만났던 한 자매님은 대학생인 딸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맨날 카페에 가서 공부한다는데, 그 시끄러운 데서 어떻게 집중이 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난색을 보였습니다. 정작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집이나 조용한 도서관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에서 공부할 때 더 능률이 오른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학에서는 사람들 속에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성과가 나타나는 것을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으로 설명합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면 은연중에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고 자연스러운 각성 상태를 유지하므로 학습 과제의 성과가 높아집니다. 심지어 웃음이나 미각도 사회적 촉진의 대상이 됩니다. TV를 봐도 함께 볼 때 더 재미있다고 느끼고, 음식을 먹을 때도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 맛있다.’라고 느낀다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다소 진정되면서 성전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지만 까닭 모를 허전함에 자꾸만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교우들과 어우렁더우렁 신앙생활의 사회적 촉진을 주고받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고도의 집중력이나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진지한 과업은 사람들 속에서 하는 것보다 홀로 집중하는 것이 훨씬 높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인간은 함께 어울려 더욱 성장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홀로 머물러 더욱 깊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시작부터 제자들을 모으시고 복음 선포의 여정을 그들과 함께 걸으셨지만, 따로 기도하시면서 홀로(μόνος) 머무시는(마태 14,23 참조) 모습을 복음서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홀로 있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모노스(μόνος)의 어원은 ‘머물다, 기다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메노(μένω)’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서 홀로 머무는 시간은 단지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성에서 떠난 ‘나 자신’이라는 유일한 존재로 내 안에서 현존하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 온전히 머무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삶을 통해 ‘홀로 그리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특수한 본성과 그로 인해 인간이 지녀야 하는 균형감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헤아려집니다.
‘코로나 시대’로 일컬어지는 이 시대의 상황들에 관해 여러 가지 해석과 우려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함께’라는 명제에 떠밀려 하느님 앞에 홀로 머물러 깊어지는 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그 절명의 시간에 대한 준엄한 초대는 아닐는지 돌아보아야 하지는 않을까요?
글 | 배기선 영덕막달레나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