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 집 없는 아이’의 내리사랑
‘집 없는 아이’는 초등학생 때 공부방 안 책꽂이에 있었으나, 집 없는 주인공의 처지가 가엾다 못해 무서워 그냥 지나쳤던 세계명작동화의 제목입니다.
올봄에 TV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의 예고편을 접하고 영화부터 볼 마음을 먹었습니다. 감염병 사태 탓에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학대당한 사건들을 접한 뒤, 원작 소설과 각색 시나리오의 작가는 학대의 위험에 놓인 주인공을 어떻게 묘사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형편에 영화 속 프랑스의 푸른 초원과 저잣거리 풍경을 눈요기하고픈 욕심도 있었습니다.
영화는 소설처럼 19세기가 배경입니다. 갓난아기 때 유괴된 소년 레미가 거리의 음악가 비탈리스를 만나 재능을 발굴하고,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진짜 가족과 행복을 찾는 줄거리입니다. 영화는 2시간 이내의 분량에 맞춰 원작을 압축하되, 아픈 과거에서 시작된 비탈리스의 회심과 내리사랑의 서사를 도입해 감동을 줍니다. 또한, 원작의 모티프인 음악을 한껏 살린 레미의 청아한 노래와 비탈리스의 바이올린 연주는 귀를 즐겁게 합니다.
비탈리스는 명예를 좇다가 원가족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형벌로 이름 없는 유랑 음악가의 삶을 택합니다. 양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단돈 35프랑에 팔아넘겨지듯 비탈리스를 따라가게 된 것은 레미에게는 오히려 구원이 되었습니다. 비탈리스가 글과 음악을 가르치고 친어머니를 찾아가는 길까지 보호해 준 덕분이지요. 레미가 재능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레미를 구출하려고 자기 평생의 보물마저 포기하는 그의 희생은 과오에 대한 속죄처럼 묘사됩니다. 노년의 레미가 유년기를 회상하는 액자식 구성은 한 아이를 위한 희생이 훗날 수십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다른 설정은 주인공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여인들의 면모입니다. 버려진 레미를 정성으로 기른 양어머니,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친구가 된 소녀 리즈, 잃어버린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린 친어머니, 비탈리스의 정체를 알아채고 점잖은 위로와 존경을 표한 귀부인.
혈육이 아니라는 이유로, 때로는 혈육인데도 연약한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려오는 요즈음, 우리에게는 이 영화처럼 혈육이 아니어도 서로에 대한 조건 없는 애정으로 희망과 구원이 된 이들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글 | 김은영 크리스티나(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