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우리는 모두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이란 ‘신앙하는 사람’, ‘신앙을 사는 사람’, ‘신앙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답을 하지 못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과 같은 뜻의 말씀을 오늘 복음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시몬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예”하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기도 하고, 용서를 청하기도 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하여 청원기도를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자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에로의 초대는 단지 무언가를 청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그에 합당한 예복을 갖추고 참여해야 하듯이,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받은 우리는 그 초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초대에 합당한 삶’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듯 우리에게 영원한 모든 것이 되어 주시는 측량할 수 없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기쁘고 행복한 우리의 삶뿐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부족함, 미움, 상처와 아픔, 좌절과 절망, 깊은 한숨마저도 하느님께 내어 맡기고 의탁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순명하신 예수님처럼,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쓸모없는 종이라고 고백하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모든 판단과 결과를 하느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수많은 판단과 단죄, 내가 행한 것에 대한 결과에 매여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을 자주 내쫓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살면서도 우리 스스로 하느님을 멀리 내모는 어리석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초대를 받은 이들로서 오늘도 새롭게 우리의 전부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합당한 응답을 드리도록 합시다.
글 | 기정만 에제키엘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