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활동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유지시킵시다!
중독의 종류도 참 다양하더군요. 알코올 의존증, 게임 중독, TV 중독, 쇼핑 중독 …. 여러 중독 가운데 일중독(workaholic)도 무섭습니다. 저 역시 한동안 일중독에 깊이 빠져 산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기도 시간은 물론이고 수면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서류에 매달렸고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녹초가 된 몸을 겨우 추스려 세면대 앞에 섰는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거울 안에는 영락없는 좀비 한 마리가 들어있었습니다. 퀭하고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한 그런 얼굴이었습니다. 기도와 활동, 영적 생활과 일이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드러나는 전형적인 증세입니다.
수도공동체 안에도 별의별 유형의 형제들이 공존합니다. 어떤 수사님은 성당의 수호성인입니다. 거룩한 얼굴로 기도에 몰두하는 얼굴을 보면 막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것을 보면 젬병입니다. 덤벙덤벙, 우왕좌왕,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수사님은 완전 반대입니다. 묵상 시간 내내 꾸벅꾸벅 깊은 탈혼상태에 머뭅니다. 기도가 끝났으니 식당으로 가자는 신호가 울리면 세상 환한 표정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작업장에 들어서면 얼굴 빛깔부터 달라집니다. 전문가도 그런 전문가가 다시 없습니다. 민첩하고 성실하고 수준 높고 ….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주님 말씀을 경청하고 기도하는 생활과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구체적인 몸짓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 중 어느 쪽을 선호합니까?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42). 언뜻 보기에 예수님께서 활동가 마르타보다는 관상가 마리아의 판정승을 선언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께서 마르타의 봉사활동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의 실천은 언제나 기도가 전제되어야 하고, 기도와 굳게 결속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의 방향이 기도나 활동, 어느 한쪽으로만 깊이 치우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둘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 깊은 영적 생활에 몰입했다면, 자기도취나 황홀경에 빠져 있어서만은 안 됩니다. 열심히 기도했다면, 그 힘을 바탕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장으로 나아가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요, 활동하는 관상가의 모습인 것입니다.
“기도 시간이 다른 시간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대단히 그릇된 생각입니다. 작업 시간에는 일로써, 기도 시간에는 기도로써 우리는 언제나 똑같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부활의 라우렌시오 수사).
글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