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있는 말씀
몇 년 전 큰 행사 준비를 맡게 된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학자이자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을 지내시기도 했던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추기경님께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시는데, 제가 행사 전반을 준비하고 추기경님의 수행과 통역을 도맡아 하게 된 것입니다. 워낙 명성이 대단한 분이셔서 긴장된 마음으로 추기경님을 맞이했지요. 그런데 며칠 동안 추기경님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면서 줄곧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성이 높으신 분인데 참 겸손하고 인자하시구나.’
그렇게 한국에서의 모든 행사를 마치고 추기경님이 떠나시는 날, 머무시던 방을 찾아가 강복을 청하여 받고, 교황님이 직접 축복하신 묵주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공항으로 향하는 승용차에 타실 때 머리 숙여 이별 인사를 하는데, 대뜸 이렇게 물으십니다. “박 신부님은 공항에 함께 안 가나요?” 그러시면서 차에서 내려 제 손을 잡으시며 무척이나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지으시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차에 ‘높으신 분들(?)’이 타고 계셔서 제 자리는 없었던 것이지요. 만약 그때 추기경님이 “박 신부님도 같이 갑시다!”라고 한마디만 하셨다면 차 트렁크에라도 타고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추기경님과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그분의 말씀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크게 감화를 받은 모양입니다.
그때의 제 마음이 어쩌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들은 제자들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 복음에서는 ‘제자들을 부르심’ 앞에 다른 사화가 없지만, 동일한 내용을 전하는 루카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기 전에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많은 병자, 특히 시몬의 장모의 병을 고쳐주시는 모습이 전해집니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이미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 듣고, 체험한 그들은 “나를 따르라.”는 그분의 한마디에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섰던 것이고,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1독서에서도 예언자 요나의 말에 회개하는 니네베 사람들의 모습이 전해집니다. 요나의 말에도 힘이 있었던 것이지요. 하느님을 깊이 체험한 요나의 삶이 그의 말에 힘을 준 것이고, 그 말씀의 힘을 니네베 사람들이 감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에 힘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분과 늘 함께 하는 삶에서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믿고 따르는 데 많은 말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삶에서 우러나는 힘이 있는 말씀 한마디, 그것이면 족합니다.
글 | 박찬호 필립보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